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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무너뜨린 일상, 법이 다시 세워야 합니다.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과 피해자 보호의 과제

얼마 전 20대 초반 여성께서 저희 이엘 성범죄 피해자 케어센터에 찾아오셨습니다. 피해자 분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포했다고 무거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해자는 친구의 친구였고, 도구는 스마트폰 하나였으며, 범행에 걸린 시간은 몇 분이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2025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는 이 현실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지난해 피해자 1만637명 중 10·20대가 77.6%입니다. AI 기반 합성·편집 피해는 16.8% 증가했고, 사이버 괴롭힘은 26.6% 늘었습니다. 숫자 뒤에는 오늘도 무너진 일상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범죄는 몇 분, 피해는 평생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잔인한 속성은 ‘비대칭성’입니다. 가해자는 몇 분 만에 범행을 완료하지만, 피해자는 수년 혹은 평생 그 영상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신규 피해자는 줄었지만 기존 영상의 반복 유포로 ‘지속 피해자’는 26.3% 증가했고, 피해자 1인당 평균 1.7건의 중복 피해를 겪습니다. 피해 유형 중 ‘유포 불안’이 27.7%로 가장 많다는 사실은, 실제 유포 여부와 무관하게 피해자가 지속적인 공포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심리적 피해를 현행법은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낮춘 문턱, 구조적으로 표적이 된 여성

과거 불법 촬영은 가해자의 물리적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AI의 보편화는 이 진입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이제 SNS 사진 몇 장과 무료 앱 하나면 됩니다. 합성·편집 피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약 45배 많다는 수치는, 딥페이크 범죄가 여성을 구조적으로 표적 삼는 성범죄임을 드러냅니다. 현장에서 피해자들은 “내가 뭘 잘못한 거냐”고 묻습니다. 잘못은 오직 가해자에게 있고, 책임은 그것을 방치한 시스템에 있습니다.

국경 없는 범죄, 국경에 막히는 구제

불법 영상 유포 사이트의 95.6%가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 법원의 삭제 명령은 해외 서버에 닿지 않고, 각국의 법제도와 플랫폼 정책의 차이 앞에서 시간은 흘러갑니다. 범죄는 국경이 없는데, 피해 구제는 국경에 막혀 있습니다. 정부가 곧 출범할 ‘디지털성범죄 피해 통합 지원단’이 삭제 불응 사이트에 실효적 제재를 가하고, 국제 공조 채널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법과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대응의 세 축은 명확합니다. 유포 첫 24시간을 좌우할 신속한 삭제 체계, 불법 콘텐츠를 탐지·차단할 플랫폼 책임 강화, 그리고 해외 서버 삭제를 가능하게 할 국제 공조입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피해자에게 “왜 그런 사진을 올렸냐”고 묻는 대신 가해자에게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어야 합니다. 2차 피해의 문화를 바꾸는 것, 그것이 법 개정만큼이나 시급한 과제입니다.

저희 의뢰인께서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삭제 요청이 거절될 때마다, 검색 결과에 이름이 뜰 때마다 무너질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AI가 무너뜨린 일상을 법이 다시 세워야 합니다. 기술이 악용될수록 법과 제도는 더 빠르게, 더 피해자 중심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차재승  대표변호사

이엘 성범죄 피해자 케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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